이 책을 다 읽고 난뒤 '리진' 하고 조용히 불러보니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떠오르면서 자살을 택한 안타까움과 콜랭, 강연의 사랑으로 작은 설레임이 일어난다. 두 권을 마치 한 권처럼 단숨에 읽어 내려간 책. 두권 째엔 책장 넘기는 것이 안타까워 일부러 천천히 음미하며 읽기도 했다.
조선시대 궁중 무희였던 리진! 궁녀는 곧 왕의 여자가 되는 것이었지만 리진을 딸처럼 아끼는 명성황후의 배려로, 리진을 보고 첫눈에 반한 콜랭 외교관을 따라 프랑스로 떠난 최초의 여성이 된다. 어릴때부터 신부님에게 프랑스어를 배웠기에 언어소통의 자유로움과 프랑스 문화에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듯 하다. 만약 리진이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했더라면 그래도 콜랭을 따라 갔을까?
'리진이 눈을 감은채 말을 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그녀의 열정에 이끌려 그녀가 구사하는 독특한 리듬의 언어를 황홀한 표정으로 경청했다. 그녀의 말은 놀라운 이미지를 펼쳐 놓은 것과 같다' 라고 표현한 프랑스에서의 생활은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해 보였으나 리진은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동양인이라는 생소함으로 늘 원숭이가 된듯한 리진은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결국 조선으로 콜랭과 함께 다시 오지만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된다. 명성황후 시해라는 을미사변의 소용돌이속에 리진은 자신을 아껴주고, 큰 힘이 되어주었던 명성황후를 따라 자살을 선택한다.
콜랭을 따라 파리로 갈때 리진의 미래는 밝으리라 생각했다. 남자의 열정과 사랑앞에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영원히 행복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리진은 흥선대원군과의 갈등으로 늘 초조해 하고 불안해 하는 명성황후를 잊을수가 없었다. 리진속에서의 명성황후는 시아버지와의 갈등, 일본과의 관계에서 괴로워하고, 초조해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리진에게는 콜랭외에도 세명의 남자가 있었다. 어릴때부터 함께 자라고 늘 그림자처럼 곁을 지켜주는 강연과, 리진을 좋아하면서도 왕비의 시기에 마음에만 담아두는 심약한 고종, 친일파 김옥균을 살해하는 열열한 애국주의자 홍종우의 일그러진 사랑이 존재한다. 강연과 잠시 지내기도 하지만 홍종우의 상소로 강연도 떠나게 된다.
리진은 프랑스에서 우리나라 소설을 프랑스어로 번역하는 작업과 자수 부채를 만들어 주면서 주체적인 삶을 살 수도 있었으나 그런 나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리진에게는 야망도 꿈도 없었다. 콜랭에 의해, 왕비에 의해 인형처럼 살았다. 남을 위해 평생을 산 듯한 리진의 삶에 가슴 한켠이 아리다. 리진은 프랑스에서 잠시 교류했던 모파상의 작품 '여자의 일생'을 생각하게 한다.
요즘 리진이 머릿속을 맴돈다. 달밤에 '춘앵무'를 추는 리진의 열정적인 모습, 콜랭과의 첫 만남에서 '봉주르' 하던 그 천진함, 프랑스 사교계에서도 시선이 집중되는 리진의 고운 자태. 자꾸만 동일시 하고 싶어진다. '봉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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