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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2008.05.07  |   인연 - 피천득 (24)

인연 - 피천득



지난 사월 춘천에 가려고 하다가 못 가고 말았다. 나는 성심여자대학에 가 보고 싶었다. 그 학교에 어느 가을 하기, 매주 한 번씩 출강한 일이 있다. 힘드는 출강을 한 학기 하게 된 것은, 주 수녀님과 김수녀니미 내 집에 오신 것에 대한 예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연이 있었다.

 수심년 전 내가 열일곱 되던 봄, 나는 처음 동경에 간 일이 있다.
어떤 분의 소개로 사회교육가 미우라 선생 댁에 유숙을 하게 되었다. 시바쿠 시로가네에 있는 그 집에는 주인 내외와 어린 딸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하녀도 서생도 없었다. 눈이 예쁘고 웃는 얼굴을 하는 아사코는 처음부터 나를 오빠같이 따랐다. 아침에 낳았다고 아사코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하였다. 그집 뜰에는 큰 나무들이 있었고 일년초 꽃도 많았다. 내가 간 이튿날 아침, 아사코는 '스위트피'를 따다가 꽃병에 담아 내가 쓰게 된 책상 위에 놓아주었다.
'스위트피'는 아사코같이 어리고 귀여운 꽃이라고 생각하였다.

 성심여학원 소학교 일학년인 아사코는 어느 토요일 오후 나와 같이 저희 학교까지 산보를 갔었다. 유치원부터 학부까지 있는 가톨릭 교육 기관으로 유명한 이 여학원은 시내에 있으면서 큰 목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아사코는 자기 신발장을 열고 교실에서 신는 하얀운동화를 보여 주었다.

 내가 동경을 떠나던 날 아침, 아사코는 내 목을 안고 내 뺨에 입을 맞추고, 제가 쓰던 작은 손수건과 제가 끼던 작은 반지를 이별의 선물로 주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선생 부인은 웃으면서 "한 십 년 지나면 좋은 상대가 될 거예요" 하였다. 나는 얼굴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사코에게 안데르센의 동화책을 주었다.

 그 후 십 년이 지나고 삼사 년이 더 지났다. 그 동안 나는 초등학교 일학년 같은 예쁜 여자 아이를 보면 아사코 생각을 하였다. 내가 두번째 동경에 갔던 것도 사월이었다. 동경역 가까운 데 여관을 정하고 즉시 미우라 댁을 찾아갔다. 아사코는 어느덧 청순하고 세련되어 보이는 영양이 되어 있었다. 그 집 마당에 피어 있는 목련꽃과도 같이, 그때 그는 성심여학원 영문과 삼학년이었다. 나는 좀 서먹서먹했으나, 아사코는 나와의 재회를 기뻐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어머니가 가끔 내 말을 해서 나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그날도 토요일이었다.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계획하지 않은 발걸음은 성심여학원 쪽으로 옮겨져 갔다. 캠퍼스를 두루 거닐다가 돌아올 무렵, 나는 아사코 신발장은 어디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그는 무슨 말인가 하고 나를 쳐다보다가, 교실에는 구두를 벗지 않고 그냥 들어간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갑자기 뛰어가서 그날 잊어버리고 교실에 두고 온 우산을 가지고 왔다. 지금도 나는 여자 우산을 볼 때면 연두색이 고왔던 그 우산을 연상한다. <셸부르의 우산>이라는 영화를 내가 그렇게 좋아한 것도 아사코의 우산 때문인가 한다.
아사코와 나는 밤늦게까지 문확 이야기를 하다가 가벼운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새로 출판된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세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것 같다.

 그 후 또 십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제2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고 또 한국전쟁이 있었다. 나는 어쩌다 아사코 생각을 하곤 했다. 결혼은 하였을 것이요, 전쟁통에 어찌 되지나 않았나, 남편이 전사하지나 않았나 하고 별별 생각을 다하였다. 1945년 처음 미국 가던 길에 나는 동경을 들러 미우라 댁을 찾아갔다. 뜻밖에 그 동네가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미우라 선생네는 아직도 그 집에서 살고 있었다. 선생 내외분은 흥분된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그리고 한국이 독립이 돼서 무엇보다도 잘됐다고 치하를 하였다.
아사코는 전쟁이 끝난 후 맥아더 사령부에서 번역 일을 하고 있다가, 거기서 만난 일본인 2세와 결혼을 하고 따로 나서 산다는 것이었다. 아사코가 전쟁 미망인이 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2세와 결혼하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만나고 싶다고 그랬더니 어머니가 아사코의 집으로 안내해 주었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20여 년 전 내가 아사코에게 준 동화책 겉장에 있는 집도 이런 집이었다.

 "아, 이쁜 집! 우리 이담에 이런 집에서 같이 살아요."

아사코의 어린 목소리가 지금도 들린다.

 십 년쯤 미리 전쟁이 나고 그만큼 일찍 한국이 독립되었더라면 아사코의 말대로 우리는 같은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뾰족 지붕에 뾰족 창문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도. 이런 부질없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에 들어서자 마주친 것은 백합같이 시들어 가는 아사코의 얼굴이었다. <세월>이란 소설 이야기를 한 지 십년이 더 지났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싱싱하여야 할 젊은 나이다. 남편은 내가 상상한 것과 같이 일본 사람도 아니고, 미국 사람도 아닌, 그리고 진주군 장교라는 것을 뽐내는 것 같은 사나이였다. 아사코와 나는 절을 몇 번씩 하고 악수도 없이 헤어졌다.

 그리워하는데도 한버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 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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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오타가 있을 수 도 있겠지만....한자 한자 책을 읽어 가며 써내려가는 글속에 또 뭉클, 따뜻한 기운이 솓는다. 예전 개인홈을 할 당시 메인 에다가 이글을 써놓고 들어 갈때 마다 읽었던 적 이있다. 그 외에도 인연 이라는 이 수필책을 굉장히 아끼고 있지만 언제나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은 이문체속의 모든 감정들이 마음속으로 흐른다.

인연이라...그런 거 같다...랄까...

좋아하던 블로그가 갑자기 말없이 사라져 버려서 조금 마음이 그렇다...
오래 오래 함.께. 남아 있었으면...그쩍그쩍...


 
 

     my dilettant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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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aycat 2008.05.07 20:27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훗 이글은 저도 좀 좋아라 했는데...^^;;;;;
    피천득님 글 참 오랜만에 보네여...

    • 령주/徐 2008.05.08 01:14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네...오랜시간 지나서 또 읽으면 역시 너무 좋고...
      그런책들이 있잖아요...전 수필책들이 참 많아요 그래서 너무 좋고요..>_<

  2. 딸뿡 2008.05.08 01:45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도 좋았겠지만.. 그래도 더 많이 기억할 수 있으니까.. 갑자기 가슴 뭉클해서 눈물이 맺힐 뻔 했네요 언니. 피천득 님의 담담한 듯 써내려 간 글은 가슴이 먼저 반응하니 휴.. 말없이 사라지는 블로거를 그냥 그려려니 여기라 하지만 그게 어찌 그리 되겠는지요. 사라진 그 분은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지만 서운한 마음이 큰 건 사실이죠.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언니.. 인연이라면 그 끈은 이어지게 되어 있으니 너무 맘쓰지 말아요. 우리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오래도록 뿌리 내리면서 지내자고요. 내가, 우리가 같은 자리에 늘 있으면 내가 그리워한, 혹은 나를 그리워한 이가 찾아 올 거라고 생각해요.

    • 령주/徐 2008.05.12 20:33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모랄까? 좀더 그냥 그렇게 왔다갔다하는 성격은 아닌지라...알잖아...많은곳과 인연이 있어보이지만 한정적이라서...블로그를 통해 아는집이 그리 많지 않은데 갑작스럽게 없어져서 좀더 그랬었나봐...하핫;;
      함께 사진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그랬는데...요즘이 아니라 좀 되었는데..쩝!! 갑자기 생각이 나서...
      hanrss에 들어가니 옆에 (-)요건가? 여하튼 그 모양이 떠있으니 아 없어진 블로그구나라고 눈에 들어와서 생각나니 좀 그랬어...크크
      너랑은 오래오래 함께 하기를..♡

  3. 센~ 2008.05.08 04:44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도 이글 참 좋아해요. ㅜ.ㅜ 트랙백 걸게요..ㅎㅎ
    작년에 타계하셨을 때 올린 글이에요. 긍데 저도 같은 내용이긴 하지만..

    • 령주/徐 2008.05.12 20:34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진짜 같은 내용이 올라와져 있어서 깜짝~!!후훗
      좀 늦은 댓글이 되었네요...보러도 그냥 갔다만 오게되었어요...히히
      정말 좋아요...ㅠㅠ

  4. 시네마천국 2008.05.08 11:0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사라졌어도 그동안의 인연은 소중하지 않나요?

    또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마주칠지도 모르고..

    • 령주/徐 2008.05.12 20:35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물론 그동안의 인연은 소중하지요...위의 글은 좋아한다는 것이지 3번째는 아니만나는것이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닌지라....
      그 인연들이 이어져오면서 제 주변이 형성되고 있는것이니깐요...안소중하다는 것이 아니라 아쉽다는것이겠죠?^^;;

      또 언젠가 다시 보면 좋겠지요??

  5. 혜아룜 2008.05.08 12:01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블로그를 말도 없이 접어버렸던 기억이 있는 저로서는 뜨끔하네요. 접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일히 돌아다니면서 블로그 그만 한다고 나중에 인연이 닿으면 만나자고 하기는 했지만 말이예요. 티스토리에서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면서 새로운 인연이 생기고 인연이 닿으면 이렇게 댓글도 남기고 하지만, 그때의 블로그 생각하면 죄송해요. 무책임하게 행동을 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피천득씨의 수필, 저도 참 좋아해요. 예전에는 별로였는데 점점 좋아지는 작품이네요. 오늘 밤에 또 읽어야지~

    • 령주/徐 2008.05.12 20:37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모 말없이 접었다고 뭐라하는건 아니고..그냥 제쪽에서 아쉬운것이니 그런것 같아요..하핫;;
      다들 나름의 사정으로 그리하시는것이니...그리고 블로그잖아요...자신이 웹상에서 있는곳이고 자신이 있기 힘들어지면 없어지는곳이기도 한걸료...^^;;
      그저 조금 아쉬움이 남은 이런 이가 있다는것도 생각해주었으면 하지만요..후훗
      저도 피천득님의 수필 정말 좋아해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좋아지는 듯 해요..그쵸??^^
      이렇게 혜아룜님에게 댓글을 남기고 음악이 들리니 너무너무 좋네요...하핫

  6. 미미씨 2008.05.08 12:45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고등학교 기억때문에 유별나게 피천득님의 "인연"은 잊혀지지 않는 글이야. 얼마전에 일본판으로 번역된 인연 수필집 사서는 스스로 독해를 해봤던 부분이네. 첫부분이라 요기만 딱 하고는 그담엔 너무 어려워서 손을 놓고 말았지만...늘 그래 첨엔 잘할것처럼 하지만 좀만 지나면...모든건 그런거 같아. 블로그에서 만난이들 다들 각자의 삶이 있긴하지만 뜸하면 섭하고 궁금하고...-_-

    • 령주/徐 2008.05.12 20:38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저도 굉장히 남는 글이였어요...크면서는 다른 수필들이 점점 더 좋아지지만요...후훗
      맞아요 블로그에서 만난 인연들은 다 각자의 삶이란것이 있으니 어쩔수 없는거 같아요....블로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홈들도 그렇잖아요...
      다만 조금 아쉬워하는 저같은 사람도 있으니깐 오래오래 함께해요 라고 말하고 싶어요..하하
      언니랑도 말이죠..아시죠 제맘?^^;;

  7. 첫눈e 2008.05.09 20:59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우리 인연 forever... ㅋㅋㅋㅋㅋㅋ;;
    령주님~~>< ㅋㅋ

  8. 필그레이 2008.05.10 00:21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후훗.저도 이책 책장에 가지런히 꼽혀있지요.^^ 언제 다시 몇번을 읽어도 괜스레 마음이 아려오는 그런 구절이예요.^^

    저도 최근 그랬어요.한창 이리저리 블로그 포스팅빨 날릴때 왕래하던 꽤 친하다 생각했던 이웃블로거분들이 아예 문을 닫거나...거의 포스팅을 안하셔서...왠지 모르게 서운하고 그렇더라고요.ㅜㅠ 저또한 인연이라 생각하고 참 계속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말예요.^^;;;;정이 많은가봐요.령주님도...^^

    아무튼 령주님 우리 오래오래 왕래하여요^^

    • 령주/徐 2008.05.12 20:40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저도 가지런히 꽂혀서 절 보고 있어요...후훗
      맞아요 필그레이님말처럼 저도 계속 읽을때마다 마음이 짠한 그런 수필들이에요..

      필그레이님도 정이 많으신거죠??으흐흐
      이렇게 필그레이님을 알게되고 사진도 보고 마음도 나누고...좋아요 좋아요...정말 그렇게 오래오래 함께해요♡

  9. Babpul 2008.05.10 18:32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도 블로그를 3번이나 옮겨다녔는데요....
    티스토리에서의 블로그는 좀 오랫동안 즐겁게 쉴 수 있는 블로그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제 첫 블로그인 야후! 블로그에서는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교류도 있던 곳이었는데....
    아무튼.... 이런 곳에서의 만남도 인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합니다. ^^;
    오랫만에 컴백했어요~ ㅎㅎㅎㅎ

    • 령주/徐 2008.05.12 20:42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아앗...너무 오랫만이에요..>_<
      요즘도 계속 바뿌시죠? 간혹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며 우아...눈을 휘둥그레하면서 보고 있어요...하핫;;
      자주 올리시는것도 좋지만 그래도 이렇게 꾸준히 볼수 있어서 더 좋아요..헤헤
      정말 밥풀꽃님 오랫만이에요^^

  10. 티아 2008.05.11 21:0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피천득.... 이글을 어쩌다보니 외우게 된 사건이 있었지만...^^
    그리움이 간절한 저에게.. 마음을 찌르는 그런거 같아요..

  11. icanfeelyou 2008.05.12 11:01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한국수필문학의 정수..딱 그말이 어울리는 작품이죠.^-^
    피천득 선생님 뵈러가고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는데..에휴..ㅠㅠ
    언제읽어도 마음을 흔드는 글. 그리고 한글귀..

    • 령주/徐 2008.05.12 20:44 신고  address  modify / delete

      맞아요..아마도 한글로 담백하면서도 여운있는 그런 수필이라 생각해요...^^
      맞아요 언제나 읽을때마다 또다른 마음으로 돌아오네요..정말...ㅠ_ㅠ)bb

  12. 2008.05.16 11:4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와도 가깝게 지내던 블로그 하나가 글이 몽땅 없어졌더라구요, 오랜만에 가 봤더니.
    뭐랄까 기분이 아주 이상했어요. 걱정 비슷하기도 하고, 배신감 비슷하기도 하고.

  13. 사또 2009.11.12 09:33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웃는 아른다운 얼굴을 좋아하고, 수수한 얼굴을 좋아하신 피천득님...지금 인연 이라는 수필집을 읽고 있습니다. 비오는날...셰부르의 노란 우산이 그리워지고...노란 단풍닢이 널르리 하게 떨어지는 요즘...갈대에 부는 바람소리가 그리워지고, 파도소리가 그리워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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